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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미/글 2021. 7. 25. 03:23

    부제 ~ 한 유튜브 영상을 보고.


    나도 어렸을 땐 꽤나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졌었다.
    그리고 이런 가치관은 대부분의 세상에서 통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결국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ㅡ 그런 뻔하지만 희망찬 레파토리.
    비단 영화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우리의 실제 인생 속에서도 그것이 사실이라는 양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앞다투어 TV에서 말한다.
    실패한 자들은 노력이 부족해서, 간절하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그게 다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큰 것을 잃은 뒤였다.
    공든 탑은 무너질 수 있다.
    세상엔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존재한다.
    아니, 사실 노력의 결과를 그대로 돌려 받은 이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세상은, (심지어 학생들을 교육하는 학교라는 곳마저) 그런 '일부'들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쏴 주었고, 나머지는 철저히 배제했다. 노력 안한 자 취급받으며 말이다.
    그래서 학창 시절 순수했던 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무대에 오르지 못한 자들에게 돌을 던졌다.
    그 돌이 유리조각으로 내게 돌아올 줄은 생각도 못하고. (내가 본 그 영상의 댓글을 인용. 너무 공감이 갔다.)

    성인이 되고 나서 (정확히는 스물 한 살이 되고 나서) 나는 남들이, 실제로 내 주변에서, "난 학창시절 (혹은 수험시절 때) 열심히 안 살아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거지-" 이런 식으로 자조적인 말을 하는 것을 많이 들어왔다. 그러면서 내게 그 내용을 공감해주길 바라는 제스쳐를 취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숨이 막혔다. 난... 솔직히 수험 시절때는 내 모든 인생을 걸고 '열심히 했다'고 말할 수 있었기에. 열심히 하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가 합당하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고진감래, 노력하는 자에게 복이 온다. 그러니 열심히 살자! 그런 말에 대해 이젠 환멸이 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내 가치관이 무너지는 사건을 겪은 후, 그럼에도, 이듬해인 2018년부터 올해 2021년까지, 나는 한 순간도 열심히 살아보지 않은 적이 없다. (물론 급격하게 우울증이 찾아와 어떻게 죽어야하나 방법까지 찾아봤었던 2020년 하반기는 제외하고.) 지금 이 글도 코딩 중 어떤 작업을 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가 쓰는 거니까.
    불행하게도 2018년부터, 지금까지, 난 한번도 '행복하다'라고 느낀 적이 없다. 하지만 '나태하게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 또한 없었다.

    그 영상을 보고 나서, 나의 수험생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쭉 돌아보았다. (자주 하는 짓이긴 하다.) 돌아보며 한 가지 의문이 남은 것이다.
    나는 왜, 열심히 살고 있는 걸까?

    내 가치관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그 후로, 나는 그 영상에서 나온 분처럼, 이렇다할 다른 가치관, 혹은 신념을 가지지 못했다. 회색빛 세상, 그 속에 한 가지 문장만을 넋을 잃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나는... 역시 안 되는 사람이구나."
    입시이후로 2018년부터 지금까지, 내겐 당근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을 해도 항상 저 문장만을 되새길 뿐이었으며, 실제로도 (초중고 시절때는 성공의 기억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실패의 경험이 성공의 그것을 능가할 정도로 수가 많아지면서 저 문장은 내게 진리인 양 자리잡았다. 문제는 가끔 가다 약간의 '성공'이라고 부를 만 한 것이 나와도, 저 문장으로 인해 그 새싹을 보지 못하고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그런 당근이 없었기에,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난 항상 열심히 했다. 학점, 동아리, 다양한 대외 활동들. 조별 과제도 항상 내가 일을 주도하는 편이었다. 왜 그랬던 걸까. 삼반수를 하기로 결심했음에도 대학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스쳐지나가듯 편입을 고민한 작년에도, 편입을 한다면 3-1 성적이 쓸모가 없어짐에도 불구하고 3-1학기를 누구보다 열심히 들었다.

    사실... 그럼에도 내게 남은 것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했던 재수 시절, 대학생..... 난 솔직히 최선을 다했다, 정말 최선을 다했어. 그래, 내가 견딜 수 없는 건 이것이다. 이렇게 가성비가 떨어지다니.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뭔들 하나 이루어낸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다!

    열심히 하는데도 진전도 없고, 결과도 없으면, 도대체 왜 이렇게 사는 것일까?
    좀비 같은걸까. 좀비가 살아 생전 하던 짓을 습관처럼 반복하던 것. 영화에 자주 나오는 설정이다. 그런 걸까...

    가치관이 무너진 채로 3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내 가치관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은 아직도 텅 비어있다.
    가끔은, 아니 자주, 그 빈 공간으로 인한 후유증이 찾아온다.
    괜찮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안 괜찮을 때는 매일 매일... 수능 때 일어났던 그 사건을 생각한다.
    남들은 하나같이 부질없다며, 잊으라지만 그게 어디 쉬울까. 원치 않아도 계속 생각나고, 어느새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문제는 그 사건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는 것이다. 정신과에 가본 적은 없지만 PTSD가 이런 것이겠구나... 짐작한다.
    비단 그 사건 뿐만이 아닌, 이제 그 이후로 TV나 여러 매체, 혹은 남들이 '수능'혹은 '입시' 이야기만 꺼내도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유튜브에 관련 영상 추천이 뜨면 클릭을 할 수가 없었다.
    집에서 부모님이 입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특히 나와 내 동생에 관련된 입시 이야기를 하면) 반사적으로 숨이 막힌다. 과장 안하고, 누가 진짜 나를 목조르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 나는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틀어 이야기가 안 들리게 하는데, 그래도 기분이 울적해지는 건 참지 못하겠더라.

    그 영상에서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부분이었다. 내가 이토록 대학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나는 왜 이토록, (재수에서 입시를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학벌에 미련을 가지고 수험 생활을 고통스러워하며 편입까지 고려하고 있을까?
    나도 아마 그 분처럼 해소가 되지 않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것을 학벌로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사실 편입을 생각하는 것에는 다른 이유도 존재하긴 하다. 혼자 전공 공부를 하며 이 생각이 커져서, 지금은 편입 이유가 학벌 반, 다른 이유 반이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앞만 바라볼 게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행복에 집중하는 것...... 나도 그랬다. 분명 2018년부터의 내 삶에도 행복한 일들이 많았을 텐데, 그 행복을 음미하려고 하지 않았으니.

    그럼 지금부터 내가 찾아야 하는 건 이 두 가지인가.
    1. 아직 갖고 있는, 해소가 되지 않은 무언가
    2. 그것을 해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소의 수단으로 학벌 말고 다른 것이 있다면)

    그래도 일단은 시도는 해 볼 것이다. 내 인생 세 번째이자 마지막 시도. 성공하면 난 대학을 세 번 바꾼 사람이 되겠지.
    하지만 만일 성공한다고 해도 그것이 내 행복을 담보해주지 않는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다.
    그게 재수 때의 나와 지금의 나와의 차이다.
    성공해도 남에게 절대 과시하지 않을 것이다. 학벌은 남들에게 우월함을 드러내는 척도가 아니며, 성공의 지표는 더더욱 아니므로.
    그냥... 된다면 소박하게, 혼자 즐거워하고, 아무도 모르게 다닐 것이다. (물론 결국엔 다 알게 되겠지만.)

    또한, 공부하면서 위에 던진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계속 생각해 볼 것이다.
    만일 실패하더라도, 저 두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인생의 관점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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