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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누
    취미/글 2023. 6. 3. 04:28

    이 글은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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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늘 그랬던 것처럼 연채는 우산을 쓰지 않고 비를 맞는다.
    빗물이 그의 이마를, 목을, 팔을, 다리를 타고 흘러내림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걷는다.
     
    "연채. 연채는 선생님이 볼 때 도덕적인 기준이 너무 높은 것 같아. 조금은 그 부분에 대해서 덜 엄격해도 돼."
     
    언젠가 들었던 선생님의 말. 선생은 그 말을 하며 차트에 무언가를 길게 써 내려갔다. 그는 선생이 무엇을 적었는지 보고 싶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비는 까맸다. 그의 흰 옷도 비에 젖어 까맣게 변해가고 있었다.
     
    "저기, 선생님... 그럼 저는 언제쯤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요?"
     
    "그걸 찾기 위해 여기에 왔잖니."
     
    선생은 연채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러나 여전히 무언가를 적는 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연채는 잠시 걸음을 주춤한다. 빗물이 오른쪽 눈에 들어갔다. 미친듯이 아팠다.
    예전에도 오른쪽 눈이 아팠던 적이 있었다. 그 땐 학교에 가기 전에 병원에 갔었는데.
    연채는 그 때를 회상했다.
     
    "그냥 외부 충격에 의해 핏줄이 터진 거예요. 안약 조금 넣으면 나을 겁니다. 그런데 눈이 왜 이렇게 된 거죠?"
     
    "아, 그냥 개가 물었어요."
     
    옆에 서있던 A가 답한다. 연채는 그냥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뒤로 학교에 갔다. 친구들에게는 개에게 물렸다고 할 수가 없어서 그냥 길 가다가 전봇대에 부딪쳤다고 했다.
     
    원래 툭하면 개와 싸웠던 연채였기에, 이번 일도 별로 놀랍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그 뒤로 개는 아프기 시작했고, 이전처럼 연채를 복종시키지 못했다. 그 뒤로 연채는 개를 모질게 대했다. 그럼에도 개는 낑낑거리고, 가끔 짖기만 할 뿐 물지 않았다. 못한 건가.
     
    비는 점점 세게 온다. 연채의 신발이 다 젖었다. 하얀 양말도 어느 새 까맣게 변했다.
    찝찝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미친듯이 찝찝하다.
    연채는 미친듯이 자신이 더럽다고 생각했다.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빨리 집에 가서 털어내고 싶었다.
     
    어느 새 빗줄기는 가시가 되었다.
    가시 하나하나가 그의 팔에 박혔다. 피가 흐른다.
    연채는 딱히 아프지는 않았다. 그냥 조금 슬프고 불안했을 뿐.
    개와, A와, 주변의 여러 살아있는 것들. 의도가 있든 없든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세웠던 날이 2배, 10배는 더 날카롭게 그에게 되돌아왔다.
    설령 그 날이 연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쓰인 것이래도, 바늘은 가차없이 그에게 돌아와 박혔다.
    '아프다..' 연채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집에 도착해 그는 바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가시를, 검은 비를, 지워버려야 해.
    그는 뒤져서 비누를 찾았다. 이상하게 비누가 파란색의 투박한 비누 하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하며 그는 열심히 비누를 문질러 거품을 냈다. 정신없이 이마, 뺨, 팔, 다리를 문질렀다.
    손으로는 안 될 것 같아 이태리 타올을 갖고 와 벅벅 밀었다. 어느 새 살갖은 빨갛게 부어오른다.
    깨끗해지고 싶다. 어떻게? 이렇게하면되는건가??
     
    연채가 정신을 차렸을 땐,  그녀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이태리 타올은 다 헤져 떨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는 이태리 타올을 포함해 모든 것을 다 내팽겨쳤다. 그리고 욕조에 물을 받았다.
     
    "깨끗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한 발씩 욕조에 발을 내딛는다. 연채는 서서히 욕조 안으로 가라앉는다. 그가 욕조에 들어갈수록 욕조 안의 물이 넘쳐 첨벙-하는 소리를 낸다. 그의 다리, 배, 가슴, 팔, 목이 차례로 들어가고, 약간의 뜸을 들인 뒤 그는 머리마저 넣었다.
     
    푸하- 몇 초간 잠수하던 그가 물을 가르고 올라와 참았던 숨을 내쉰다.
    이제 나는 깨끗한가? 연채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거울을 봐도 알 수 없었으니까.
     
     
    "KTX xxx train, departing for XXX, is now approaching...."
     
    연채는 캐리어를 끌고 역사 맞이방으로 나왔다. 그리고 급하게 근처 꽃집에 들렀다.
    카네이션은 볼품없었고, 대신 향이 깊은 조그마한 다른 꽃을 샀다.
     
    연채의 개가 역사에 마중나오기로 되어 있었다. 연채는 짐을 가득 양손에 들고 역사 중앙으로 걸어갔다.
    역사를 지나치는 수많은 개들. 개중에는 윤기도 흐르고 포동포동한 개체도 많았다.
    그 중 연채의 개는... 어느 순간부터 윤기도 없고 비쩍 말랐다. 털은 하얗게 셌다.
    개를 찾을 때마다 느끼는 이 기분은 정말 적응이 안 된단 말야. 연채는 짧게 생각하며 개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개에게 꽃을 내민다.
     
    개는 이런건 왜 사왔냐고 하며, 그럼에도, 꽃을 받아 든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 연채의 손을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가자, 집으로. 맛있는 거 사다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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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친절한.금자씨>를 (이제서야)봤다. 봤는데 정말 명작이었다.... 이걸 왜 이제서야 봤을까.
    난 영알못이라 (그래도 영화 나름 알아가는 단계,,,?) 해당 감독의 작품은 몇 편밖에 안 봤다. 그 중 하나가 <헤어질.결심>인데, 연출과 색감, 미친 미장센, 각종 은유들에는 정말 감탄하면서 봤지만 주인공들의 감정선에 100% 공감했다고 말할 순 없었다. 나는 어느 정도 나이는 먹었지만 (연애도 몇 번 해 보았지만) 아직까지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한다.
    반면 <친절한.금자씨>는 내가 딱히 범죄급의 큰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고 복수를 실행에 옮길 정도로 누군가를 증오해본 적도 없지만 이상하게 주인공의 감정선에 공감이 되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 (스포가 될까봐 자세히 묘사는 하지 않겠다.) 마지막 그 장면이 난 절절하게 공감이 갔다.
    보면서 BI.BI의 <비.누>라는 노래도 생각이 났다. 개인적으로 이 노래를 좋아한다. 가사가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질 정도로 더럽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나는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비누로 내 몸을 씻는 것처럼, 두부에 얼굴을 파묻는 것처럼, 그런 방법으로 쉽게 깨끗해질 수는 없는 걸까?
     
    이러한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썼다. 여지껏 에세이만 썼기에, 픽션을 쓰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한 2년? 3년...? 물론 이것도 의식의 흐름으로 쓴 거라 보통의 소설에서 구체화되는 인물과 시공간의 설정 같은 건 들어가있지 않다.
    문장을 제대로 다듬지도 않았다. (근데 사실 나는 대부분의 글에서 그냥 귀찮아서 퇴고하지 않고 (혹은 간단하게만 하고) 그냥 올린다...) 그래서 되게 형편없을수도 있지만. 그래도 올려본다. 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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